일본 싱어송라이터 카노우 미유가 후쿠오카 DRUM LOGOS에서 열린 ‘Road To Bu-Rock’ 무대에 올라 약 30분 동안 여섯 곡을 선보였다. 합동 공연에서 30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한 아티스트의 음악적 세계를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짧고, 단독 공연처럼 관객과 긴 호흡을 만들어가기에도 제한이 많다. 더욱이 이날처럼 서로 다른 팬층을 가진 여러 팀이 한 무대에 오르는 공연에서는 객석의 상당수가 해당 아티스트를 처음 접하는 관객일 가능성도 높다. 결국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고, 동시에 다음 곡까지 듣게 만드는 힘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날 카노우 미유의 무대는 30분이라는 제한을 단순한 약점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긴 MC를 줄이는 대신 곡과 곡 사이의 흐름을 촘촘하게 연결했고, 오리지널 곡을 중심에 놓으면서 한국곡 커버를 후반부의 전환점으로 사용했다. 밝고 추진력 있는 초반부에서 출발해 내면적인 감정을 거쳐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후반부로 이동한 뒤, 마지막에는 다시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자작곡으로 돌아오는 구조였다. 짧은 세트였지만 카노우 미유가 현재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러 얼굴을 압축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세트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구성됐다.
- It’s a New World
- HELLO, TOKYO
- 검은 심장
- TERMINAL
- 비밀번호 486
- DO IT NOW
여섯 곡 가운데 대부분을 자신의 음악으로 구성하고, 다섯 번째 자리에 윤하의 ‘비밀번호 486’을 배치한 점도 눈에 띈다. 익숙한 한국곡으로 공연을 시작하거나 끝내는 대신 자신의 음악을 충분히 들려준 뒤 커버곡을 통해 객석과의 거리를 좁히고, 다시 마지막 자작곡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커버곡이 공연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세트 전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기능을 맡았다.
무엇보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밴드 편성이 카노우 미유의 음악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솔로 싱어송라이터이지만, 밴드와 함께 무대에 섰을 때 음원의 멜로디와 보컬 중심 구조는 보다 물리적인 라이브 사운드로 확장된다. 드럼과 베이스, 기타가 곡의 리듬과 다이내믹을 전면으로 끌어내면서 보컬 역시 단순히 노래를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사운드 전체와 긴장을 주고받게 된다. 이날 공연은 그 변화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난 무대였다.

30분이라는 제한이 오히려 만든 밀도
합동 공연에서 짧은 러닝타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아티스트의 인상을 크게 좌우한다. 단독 콘서트라면 긴 MC와 느린 흐름도 공연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여러 팀이 연이어 등장하는 무대에서는 관객의 집중을 확보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특히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이 많은 환경에서는 배경 설명보다 음악 자체를 먼저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카노우 미유는 이날 첫 곡 ‘It’s a New World’를 시작한 뒤 긴 멘트를 두지 않고 곧바로 ‘HELLO, TOKYO’를 연결했다. 두 곡이 사실상 하나의 오프닝 블록처럼 이어졌고, 첫 인사는 그 이후에야 짧게 들어갔다. 이후에도 곡 사이의 대화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음악을 빠르게 이어가면서 첫 곡에서 만들어진 흐름이 중간에 크게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여섯 곡으로 채워졌음에도 공연이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러한 구성은 팬을 위한 단독 공연과 합동 공연의 목적이 다르다는 점을 비교적 정확히 짚은 선택이었다. 단독 공연에서는 이미 관계가 형성된 관객을 상대로 아티스트의 세계를 깊게 확장할 수 있지만, 합동 공연에서는 아직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먼저 자신을 각인시켜야 한다. 긴 설명을 통해 “나는 이런 아티스트다”라고 말하기보다 실제 곡을 연이어 들려주면서 음악의 성격을 보여주는 쪽이 훨씬 직접적이다. 이날 카노우 미유의 무대는 바로 후자에 가까웠다.
다만 이 방식이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선곡에도 분명한 흐름이 필요하다. 단순히 빠른 곡만 연달아 배치하면 30분 동안 에너지는 유지할 수 있지만 아티스트의 음악적 폭을 전달하기 어렵다. 반대로 감정적인 곡이 지나치게 많으면 처음 보는 관객을 붙잡아둘 추진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이날 세트는 초반의 두 곡으로 빠르게 무대를 연 뒤 ‘검은 심장’과 ‘TERMINAL’을 통해 감정과 서사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비밀번호 486’과 ‘DO IT NOW’에서 다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It’s a New World’와 ‘HELLO, TOKYO’, 무대를 빠르게 장악한 오프닝
첫 곡 ‘It’s a New World’는 공연의 시작점으로 적절했다. 제목부터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음악적으로도 초반부터 관객의 집중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는 추진력을 지닌다. 밴드 편성에서는 리듬 섹션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곡이 가진 전진성이 음원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졌고, 카노우 미유 역시 첫 곡부터 무대의 에너지를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어진 ‘HELLO, TOKYO’ 역시 같은 흐름을 유지했다. 두 곡 사이에 긴 대화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각각의 곡이라기보다 하나의 연속된 도입부처럼 기능했고, 관객 입장에서는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빠르게 카노우 미유의 음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특히 합동 공연의 두 번째 순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초반의 속도감은 중요했다. 앞선 팀의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의 집중이 다시 분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처음부터 다시 쌓기보다 곧바로 음악으로 밀고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카노우 미유의 보컬 특성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의 목소리는 전형적인 록 보컬처럼 무겁고 거친 질감을 전면에 내세우는 유형과는 다르다. 비교적 밝고 또렷한 음색을 유지하면서도 강한 밴드 사운드 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보하는 쪽에 가깝다. 밴드가 사운드를 강하게 밀어붙여도 보컬이 같은 방식으로 거칠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색의 대비가 발생한다.
이러한 대비는 향후 밴드 기반의 라이브를 확장할 때 중요한 장점이 될 수 있다. 밴드가 단순히 솔로 보컬의 반주로 머물러도 안 되고, 반대로 악기의 사운드가 지나치게 강해 보컬의 정체성을 덮어서도 안 된다. 이날 초반부에서는 두 요소가 서로를 지우기보다 각각의 성격을 유지한 채 긴장감을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검은 심장’, 밴드 사운드가 감정의 무게를 바꾼 순간
세 번째 곡 ‘검은 심장’에서는 앞선 두 곡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밝은 추진력을 앞세웠던 초반과 달리 곡이 가진 긴장감과 어두운 정서가 전면으로 올라왔다. 사랑 안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상반된 감정과 모순을 다루는 곡인 만큼, 단순히 멜로디를 아름답게 전달하는 것보다 감정이 흔들리는 지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곡이다.
이날 밴드 편성은 바로 이 부분에서 효과를 보였다. 드럼과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무게와 기타의 질감이 음원보다 앞으로 나오면서 곡의 정서는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전달됐다. 흥미로운 것은 밴드가 강해졌다고 해서 보컬 역시 같은 방향으로 힘을 밀어붙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카노우 미유는 움직임과 표현을 일부 절제하면서 악기 사운드와 보컬 사이의 대비를 활용했다. 밴드가 감정의 외부적인 압력을 담당하고, 보컬은 그 안에서 보다 세밀한 정서를 전달하는 구조에 가까웠다.
카노우 미유의 라이브에서 눈여겨볼 부분 가운데 하나는 곡의 성격에 따라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을 분명하게 바꾼다는 점이다. 모든 곡을 같은 수준의 퍼포먼스와 음압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밝고 외향적인 곡에서는 관객과 적극적으로 시선을 교환하고, 감정 중심의 곡에서는 동선을 줄이면서 보컬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이런 차이가 축적될수록 짧은 공연 안에서도 곡마다 서로 다른 표정이 생긴다.
‘검은 심장’은 이날 밴드 편성이 카노우 미유에게 왜 필요한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 곡 가운데 하나였다. 밴드가 단순히 음악을 크게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곡의 감정에 또 다른 층을 추가했고, 그 위에서 보컬이 자신의 색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TERMINAL’, 카노우 미유의 현재와 겹쳐 보인 노래
이어진 ‘TERMINAL’은 이날 세트리스트 가운데 가장 서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터미널이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 목적지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출발점이다. 사람은 그곳에서 만나고, 잠시 머물며, 다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카노우 미유는 이러한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공간에서 출발해 곡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미지가 현재 그의 활동 방식과 자연스럽게 겹쳐 보인다는 점은 흥미롭다.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후쿠오카를 비롯한 일본 각지를 오가고, 한국에서도 공연하며 새로운 관객을 만난다. 공연장이 달라질 때마다 객석의 얼굴도 달라지고, 어떤 팬은 여러 지역에서 반복해서 만나지만 어떤 사람과는 그날의 공연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싱어송라이터의 모든 곡을 실제 삶과 직접 연결해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아티스트가 살아가는 방식과 작품 속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만날 때 노래가 갖는 설득력은 한층 커진다.
특히 이날 공연이 열린 곳이 후쿠오카라는 점 역시 곡의 인상을 더했다. 후쿠오카는 일본의 다른 대도시와 비교해 한국과 물리적으로 가까우며, 실제로 양국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한 도시다. 공연장에도 일본 관객뿐 아니라 한국에서 찾아온 관객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고, 한국과 일본의 뮤지션들이 같은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 공간에서 ‘TERMINAL’이라는 곡을 듣는 경험은 음원으로 곡을 듣는 것과 조금 다른 맥락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한 공연장에 잠시 모이고, 몇 시간 뒤에는 다시 각자의 도시로 흩어진다는 상황 자체가 곡의 이미지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브가 음원과 다른 가치를 갖는 이유도 이런 데 있다. 같은 음악도 어느 공간에서 누구와 함께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의 층을 얻을 수 있다.
‘비밀번호 486’, 커버곡이 아니라 관객과 연결되는 장치
공연 후반부에서 가장 즉각적인 객석 반응을 이끌어낸 곡은 윤하의 ‘비밀번호 486’이었다. 익숙한 전주가 시작되자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커졌고, 앞선 곡에서 비교적 차분하게 이어지던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카노우 미유 역시 무대 좌우를 보다 적극적으로 오가며 관객과 눈을 맞추고 손을 내미는 등 공연의 성격을 관람 중심에서 참여 중심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곡을 단순한 한국 팬을 위한 서비스성 커버로만 해석하면 이날 세트리스트에서 ‘비밀번호 486’이 담당한 역할의 절반 정도만 보는 셈이다. 카노우 미유는 한국과 관련된 활동에서 꾸준히 한국 노래를 자신의 레퍼토리에 포함해왔고, 따라서 한국곡 커버는 일회적인 이벤트를 넘어 라이브 활동의 한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더욱이 이날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 후쿠오카의 공연장이었다. 일본 무대에서도 한국곡을 자신의 세트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했다는 점에서 이 곡은 이제 특정 국가의 공연을 위한 특별 레퍼토리라기보다 카노우 미유의 현재 활동범위를 설명하는 음악 가운데 하나에 가까웠다.
세트리스트에서 다섯 번째라는 위치 역시 중요했다. 첫 곡부터 ‘비밀번호 486’을 배치했다면 익숙한 커버곡의 힘을 빌려 관객의 관심을 얻는다는 인상이 강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공연의 마지막을 이 곡으로 끝냈다면 관객에게 남는 최종 인상이 카노우 미유 자신의 음악보다 유명 커버곡에 집중됐을 수도 있다. 이날은 오리지널 곡 네 곡을 충분히 보여준 뒤 커버곡으로 관객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자작곡 ‘DO IT NOW’로 돌아갔다.
이 구조는 해외 활동을 넓혀가는 아티스트에게 특히 중요하다. 현지에서 잘 알려진 노래는 새로운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입구가 될 수 있지만, 결국 그 입구를 통해 자신의 음악으로 관객을 이동시키지 못한다면 아티스트로서 장기적인 기반을 만들기 어렵다. ‘비밀번호 486’을 계기로 카노우 미유의 무대를 처음 본 사람이 이후 ‘검은 심장’이나 ‘TERMINAL’을 찾아 듣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이날 ‘비밀번호 486’은 공연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과 카노우 미유의 음악 사이에 놓인 연결 장치로 기능했다.
시각적인 변화까지 이용한 후반부의 전환
공연 후반부의 변화는 음악에만 머물지 않았다. 카노우 미유는 초반에 착용하고 있던 하늘색 라이더 재킷을 벗은 뒤 보다 가벼운 차림으로 무대를 이어갔고, 동시에 동선과 퍼포먼스의 크기도 눈에 띄게 확대됐다. 단순한 의상 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공연의 흐름에서는 후반부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시각적인 장치가 됐다.
라이브 공연은 음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의상과 조명, 무대 위의 이동, 관객을 바라보는 시선과 몸의 움직임도 모두 공연의 리듬을 구성한다. 특히 30분 정도의 짧은 합동 무대에서는 대형 단독 콘서트처럼 복잡한 무대장치나 긴 연출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아티스트 자신의 몸과 동선이 가장 직접적인 연출 수단이 된다.
카노우 미유는 후반부에서 이러한 작은 무대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객석과 물리적인 거리가 짧다는 점을 퍼포먼스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1열 관객에게 손을 내밀거나 손하트와 하이터치 등 짧은 상호작용을 이어갔다. 이는 무대 규모가 작아졌기 때문에 퍼포먼스를 축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객과 가까워졌다는 조건을 이용해 공연의 성격을 변화시킨 경우에 가깝다.
카노우 미유의 라이브에서 이러한 현장 대응 능력은 중요한 강점이다. 대형 무대에서는 시각적인 움직임과 전체적인 퍼포먼스가 중요하지만, 작은 라이브하우스에서는 관객 개인과 직접 연결되는 순간이 공연의 기억을 좌우하기도 한다. 무대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관계를 만드는 능력은 향후 공연 활동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DO IT NOW’, 자신의 음악으로 끝내는 선택
마지막 곡으로 선택된 ‘DO IT NOW’는 이날 세트 전체의 구조를 완성했다. 제목 그대로 망설이기보다 지금 움직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자작곡으로, 단순히 신나는 분위기 때문에 마지막에 배치된 곡이라고 보기에는 공연의 시작과도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첫 곡 ‘It’s a New World’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이미지라면, 마지막 ‘DO IT NOW’는 그 문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움직이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그 사이에 ‘검은 심장’과 ‘TERMINAL’을 통해 내면적인 감정과 이동의 이야기가 들어가고, ‘비밀번호 486’에서 관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을 만든 뒤 다시 자신의 음악으로 돌아온다. 의도된 서사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세트의 처음과 끝이 하나의 방향성을 형성했다.
무대에서도 ‘DO IT NOW’는 마지막 곡으로서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제공했다. 밴드는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사운드를 밀어붙였고, 카노우 미유 역시 무대를 넓게 사용하며 남은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달했다. ‘비밀번호 486’에서 만들어진 객석의 반응을 그대로 이어받되, 마지막 기억을 자신의 곡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선곡의 목적도 분명했다.
카노우 미유의 한국 관련 활동을 생각할 때 이 부분은 더욱 중요하다. 한국에서 인지도를 넓히는 과정에서 한국곡 커버는 분명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아티스트를 남기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음악이다. 익숙한 노래를 잘 부르는 일본 가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래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관객이 카노우 미유의 오리지널 음악을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공연의 마지막이 ‘비밀번호 486’이 아니라 ‘DO IT NOW’였다는 사실은 단순한 순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공연은 관객에게 익숙한 노래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카노우 미유 자신의 세계로 돌아와 마무리됐다.
밴드 편성에서 보이는 가능성과 다음 단계
이날 공연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카노우 미유가 라이브 밴드와 만났을 때 얻는 확장성이다. 싱어송라이터에게 밴드 편성은 단순히 소리를 크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곡의 다이내믹을 넓힐 수 있고, 보컬이 모든 흐름을 홀로 끌고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퍼포먼스와 감정 표현에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카노우 미유는 그 여유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밴드가 리듬을 끌고 가는 동안 관객과 시선을 주고받고, 무대의 동선을 넓히며, 클라이맥스에서는 보컬의 에너지를 집중시킨다. ‘검은 심장’처럼 감정의 무게가 중요한 곡에서는 악기가 보컬 바깥의 긴장을 만들어주고, ‘DO IT NOW’에서는 밴드 전체가 곡의 추진력을 극대화한다. 솔로 싱어송라이터라는 기본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라이브에서는 보다 역동적인 아티스트로 확장될 수 있는 이유다.
동시에 다음 단계에서 발전시킬 여지도 보인다. 밴드 사운드 자체를 강하게 만드는 것보다 각 곡에서 악기가 얼마만큼 전면에 등장하고 언제 물러날지를 보다 세밀하게 설계한다면 곡 사이의 대비는 한층 선명해질 수 있다. 특히 ‘TERMINAL’처럼 서사와 공간감이 중요한 곡에서는 여백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DO IT NOW’ 같은 곡에서는 라이브에서만 가능한 폭발력을 더욱 크게 만드는 방식도 가능하다.
즉 카노우 미유의 밴드 라이브가 앞으로 향해야 할 다음 단계는 단순히 ‘밴드와 함께 공연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각각의 곡을 라이브 무대에서 어떻게 새롭게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같은 노래가 음원과 공연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할 때 라이브 아티스트로서의 개성도 더욱 뚜렷해진다.

서로 다른 팬덤이 한 공간에서 만났다는 것
이날 ‘Road To Bu-Rock’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카노우 미유의 무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연에는 밴드기린, 카노우 미유, She Her Her Hers, 리도어, LUCKLIFE 등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을 가진 팀들이 참여했고, 객석 역시 각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찾아온 여러 팬층이 한 공간에 섞여 있었다. 특히 한국 아티스트의 무대를 보기 위해 후쿠오카까지 이동한 한국 관객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합동 공연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관객에게 자신이 원래 선택하지 않았던 음악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한 팀을 보기 위해 티켓을 구입하지만 공연장에 들어온 이상 그 앞뒤에 배치된 다른 아티스트의 무대도 함께 접하게 된다. 온라인에서 추천 알고리즘이 새로운 음악을 보여준다면, 여러 팀이 참여하는 라이브 공연은 오프라인에서 비슷한 발견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카노우 미유의 ‘비밀번호 486’은 이런 환경에서 특히 효과적인 접점이 됐다. 그를 처음 보는 한국 관객에게도 즉시 알아볼 수 있는 곡이 등장하면서 무대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졌고, 그 과정에서 카노우 미유라는 아티스트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반대로 미유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관객 역시 한국과 일본의 다른 팀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한일 음악 교류가 반드시 대형 페스티벌이나 국가 차원의 문화사업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작은 공연장에서 서로 다른 아티스트와 팬이 우연히 만나고, 한 곡을 통해 처음 다른 나라의 음악을 발견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보다 일상적인 교류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규모는 작지만 실제 팬의 취향이 이동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라이브하우스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Road To Bu-Rock’이 보여준 카노우 미유의 현재
후쿠오카 DRUM LOGOS에서 열린 이날 공연은 카노우 미유의 커리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대도, 가장 긴 공연도 아니었다. 30분 동안 여섯 곡을 선보인 합동 라이브였다. 그러나 때로는 긴 단독 공연보다 이런 짧은 무대에서 아티스트의 현재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자신을 처음 보는 관객이 많은 만큼 음악적 특징을 보다 명료하게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카노우 미유가 선택한 중심은 분명 자신의 음악이었다. ‘It’s a New World’와 ‘HELLO, TOKYO’로 빠르게 공연을 열고, ‘검은 심장’과 ‘TERMINAL’을 통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감정과 서사를 보여줬다. 이후 ‘비밀번호 486’을 통해 한국 관객을 포함한 객석과 거리를 좁힌 뒤 마지막은 ‘DO IT NOW’로 다시 자신의 메시지에 돌아왔다. 밴드 편성은 이러한 곡의 성격을 보다 크게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했고, 후반부의 적극적인 퍼포먼스는 라이브하우스 특유의 짧은 거리를 공연의 장점으로 바꿨다.
현재 카노우 미유의 음악적 모습은 하나의 장르로 완전히 정리되어 있다기보다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단계에 가깝다. 밝고 추진력 있는 팝의 성격, 밴드 사운드와 만났을 때 드러나는 강한 에너지, ‘검은 심장’과 ‘TERMINAL’에서 나타나는 감정 중심의 싱어송라이터적 면모, 그리고 한국 음악과 한국 팬을 자신의 활동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 함께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따로 움직이기보다 최근 무대에서 조금씩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방향을 압축하면 오리지널 음악을 중심에 두고, 밴드 사운드로 라이브의 에너지를 확장하며, 한국과 일본의 음악을 새로운 관객과 연결하는 접점으로 활용하는 것에 가깝다. 아직 완성된 결과라고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적어도 ‘Road To Bu-Rock’의 30분은 카노우 미유가 라이브 아티스트로서 어떤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지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 의미 있었던 것은 한국과의 연결이 별개의 특별 이벤트처럼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후쿠오카의 무대에서 자신의 오리지널 곡 사이에 한국곡이 자연스럽게 들어갔고, 일본과 한국의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그 음악에 반응했다. 한국 활동과 일본 활동을 서로 다른 두 영역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브 레퍼토리 안에서 조금씩 연결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카노우 미유의 활동을 바라볼 때 중요한 관찰 지점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날 무대의 가치는 ‘30분 동안 여섯 곡을 잘 소화했다’는 평가에만 있지 않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자신의 오리지널 음악과 밴드 사운드, 한국과 연결된 레퍼토리,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하나의 흐름 안에 배치하면서 현재 자신의 활동 방향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줬다는 데 있다. ‘Road To Bu-Rock’은 카노우 미유가 이미 완성된 형태의 아티스트라는 것을 증명한 무대라기보다, 여러 가능성을 실제 라이브에서 결합하며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무대에 더 가까웠다.
후쿠오카에서의 30분은 짧았다. 그러나 그 짧은 무대 안에는 카노우 미유가 현재 어디에 서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더 확장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단서가 충분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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