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과 일본의 대중음악 교류를 이야기할 때 중심에 놓이는 질문은 비교적 단순했다. 한국 가수가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 그리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규모의 일본 음악시장에서 한국 음악이 어느 정도까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일본은 오랫동안 한국 가수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해외시장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에서 이름을 알린 아티스트가 일본어 음반을 발표하고 현지 방송과 공연을 통해 팬층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은 하나의 전형적인 해외 진출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보아를 시작으로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를 거쳐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에 이르기까지 세대는 계속 바뀌었지만 흐름의 방향은 오랫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음악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일본이라는 거대한 시장 안에서 다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구조였다. 초기에는 일본어 음반을 제작하고 현지 방송에 출연하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중요했다면, K-POP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적 브랜드로 자리 잡은 이후에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과 퍼포먼스를 비교적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본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희미했던 반대 방향의 흐름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이 늘어나고 공연장 규모가 확대됐으며,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는 일본 음악을 소비하는 한국 청취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본 음악을 적극적으로 찾아 듣는 일부 팬층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J-POP이 이제는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와 대형 공연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26년 상반기 KT지니뮤직에서 J-POP 장르 스트리밍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9.5% 증가했다는 수치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인상이나 일부 팬덤의 움직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이 단순히 ‘한국에서 J-POP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 아티스트가 일본 팬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현지 활동을 준비하던 과거의 장면과 반대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팬과 직접 소통하려는 일본 아티스트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아티스트가 서울 무대에 오르고, 한국 팬이 일본어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국 공연에서 만들어진 영상이 다시 일본과 다른 나라의 팬에게 전달된다. 대형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뿐 아니라 수십 명에서 수백 명 규모의 라이브하우스와 소규모 공연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지금의 한일 음악 교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K-POP의 일본 진출’과 ‘J-POP의 한국 유입’을 서로 별개의 현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난 20여 년 동안 양국 음악시장을 가르던 경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음반사와 방송사, 대형 기획사가 국경을 넘는 주체였다면 오늘날에는 스트리밍 플랫폼과 SNS, 그리고 팬 개개인이 그 역할의 일부를 대신하고 있다. 음악이 먼저 국경을 넘고, 팬이 생긴 뒤, 아티스트가 그 뒤를 따라 이동하는 새로운 순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음악을 걱정하던 한국, 그리고 예상과 달랐던 결과
지금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후반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1998년부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단계적으로 추진했고, 1999년과 2000년을 거치며 영화와 공연 등을 순차적으로 개방했다. 2004년 1월 제4차 개방 이후에는 일본어로 제작된 대중가요 음반의 국내 유통까지 사실상 전면적으로 가능해졌다. 현재의 젊은 음악 팬에게는 다소 낯선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이전까지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에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었다.
물론 제도적인 규제가 있었다고 해서 한국에서 일본 음악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X JAPAN,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 L’Arc~en~Ciel을 비롯한 일본 아티스트들은 이미 일부 한국 팬 사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일본 음반을 직접 구입하거나 위성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접하는 팬들이 있었고, 일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계기로 일본 대중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만 일부 마니아가 적극적으로 찾아 듣는 것과 대중시장에서 정식으로 음반이 유통되고 방송과 광고를 통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우려도 제기됐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큰 음반시장과 방송산업, 엔터테인먼트 자본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러한 콘텐츠가 제한 없이 유입될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던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각이 존재했다. 특히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일본 음악과 방송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한국 콘텐츠가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예상과 상당히 달랐다. 일본 음악이 전면 개방 직후 한국 대중음악 시장을 장악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 음악을 좋아하는 팬층은 확대됐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 구조를 뒤흔들 정도의 시장 잠식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비슷한 시기 반대편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일본 사회에서 새로운 소비층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점은 오늘날 한일 음악 교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문화의 흐름은 반드시 시장 규모가 큰 곳에서 작은 곳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콘텐츠의 경쟁력과 팬덤의 형성 방식,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시장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더 큰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시 새로운 흐름이 반대 방향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20여 년 전 일본 문화의 유입을 걱정했던 한국이 이후 세계적인 K-POP 생산국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다시 일본 음악이 한국에서 새로운 소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한일 대중문화의 관계가 얼마나 복합적으로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K-POP이 만든 20여 년의 흐름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커졌다. 드라마 ‘겨울연가’를 중심으로 한 한류 열풍은 일본 사회 전반에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켰고, 음악 분야에서는 보아가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 가수가 일본 대중음악 시스템 안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후 동방신기 등을 비롯한 한국 아티스트들이 일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음악 분야의 한류 역시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한국 가수들의 일본 활동은 단순히 한국에서 발표한 음악을 일본에 소개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일본어 음반을 별도로 제작하고 일본 음반사와 협력했으며, 현지 방송과 프로모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일본 팬을 위한 공식 팬클럽을 별도로 운영하고 일본 시장에 맞춘 콘서트와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성공한 아티스트가 일본 시장에 ‘수출’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음악산업 안에 직접 들어가 일본 아티스트와 같은 조건에서 활동하는 현지화 전략에 가까웠다.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 구조는 다시 변화했다. 소녀시대와 카라가 일본 대중시장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확보했고, 이후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 세븐틴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의 K-POP 아티스트가 일본에서 대규모 팬덤을 형성했다. 과거에는 일본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일본어 노래와 일본식 프로모션 전략이 사실상 필수적으로 여겨졌다면, K-POP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이후에는 한국어 곡과 한국에서 제작된 콘텐츠 자체를 소비하는 일본 팬도 크게 증가했다.
이 변화는 상당히 중요하다. 처음에는 한국 아티스트가 일본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일본 음악산업의 문법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K-POP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 일본 팬이 한국어 노래를 듣고, 한국 예능과 SNS 콘텐츠를 찾아보며, 한국에서 발표되는 신곡을 실시간으로 소비한다. 일본어 번역본이나 현지 음반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거의 동시에 콘텐츠를 접한다. 한국 음악이 일본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일본 음악처럼 변해야 하는 시대에서, 한국 음악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로 이동한 것이다.
일본에서 K-POP은 이제 단순한 해외 음악이나 일시적인 유행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위치를 차지한다. 일본의 주요 음악 차트와 대형 공연장, 광고 시장에서 한국계 아티스트의 존재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일본에서 데뷔하거나 활동하는 그룹 가운데 한국의 제작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결된 사례도 많아졌다. 일본 젊은 세대에게 K-POP은 해외 음악이면서 동시에 일상적인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 됐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여 년 동안 한국에서 일본으로 향했던 강력한 음악의 흐름과 비교하면 규모는 아직 작지만, 반대 방향에서도 움직임이 분명하게 확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J-POP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2004년 일본 대중음악이 전면적으로 개방됐다고 해서 J-POP이 곧바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나카시마 미카를 비롯해 한국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얻은 일본 아티스트가 있었고, 일본 록과 애니메이션 음악을 중심으로 상당히 탄탄한 팬층도 존재했다. 그러나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J-POP은 오랫동안 한국 대중음악과 미국·영국 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된 영역에서 소비됐다.
일본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느 정도 특정한 취향을 의미하던 시기도 있었다.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즐기거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거나, 일본 밴드와 아이돌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사람들이 주로 J-POP 소비층을 구성했다. 한국에서 일본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대중적으로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음악이라기보다는 관심 있는 사람이 직접 정보를 찾고 음원을 구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 분위기가 분명하게 달라지고 있다. YOASOBI, 후지이 카제, 요네즈 켄시, 유우리, 아이묭, Vaundy, Official髭男dism, King Gnu 등 서로 다른 음악적 색깔을 가진 일본 아티스트가 한국 청취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특정 장르나 애니메이션 음악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싱어송라이터, 밴드, 록, 팝 등 여러 분야의 일본 음악이 동시에 한국 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YOASOBI의 한국 공연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2023년 서울에서 열린 첫 단독 내한 공연에서는 한국 관객이 일본어 가사를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일본어를 사용하는 해외 아티스트의 음악을 한국 팬이 단순히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 공연장에서 함께 노래하는 풍경은 과거와 달라진 일본 음악의 위치를 보여줬다.
이후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은 더 이상 일부 마니아를 위한 이벤트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공연장의 규모가 커졌고 장르와 세대 역시 다양해졌다. 수천 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시작해 아레나와 돔급 시설을 검토할 수 있는 일본 아티스트가 나타났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중견 가수와 밴드뿐 아니라 현재 일본 음악시장의 중심에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도 서울을 투어 일정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수치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확인된다. KT지니뮤직에 따르면 2026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J-POP 장르 스트리밍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9.5% 증가했다. 단순히 일본 유명곡 한두 곡이 국내 차트에서 성공한 것을 넘어 J-POP이라는 카테고리 자체의 소비량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연시장에서도 King Gnu, Vaundy, Official髭男dism을 비롯한 일본의 주요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 대규모 공연을 추진하거나 개최하면서 시장의 규모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한국에서 J-POP이 차지하는 비중을 일본에서 K-POP이 확보한 시장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차이가 크다. 한국 대중음악이 일본에서 쌓아온 산업적 기반은 이미 2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고, 대형 기획사와 음반사, 방송, 공연시장까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반면 한국에서 최근 나타나는 J-POP 성장세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쪽의 규모가 같은가가 아니라,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 흐르던 음악 이동이 이제 반대 방향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경보다 알고리즘이 먼저 음악을 선택하는 시대
J-POP이 한국에서 이전보다 빠르게 확산되는 가장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는 음악을 발견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데 있다. 과거 해외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의도적인 행동이 필요했다. 수입 음반을 판매하는 매장을 찾아가거나 해외 음악 전문 방송과 잡지를 통해 정보를 얻어야 했고,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에도 해외 아티스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직접 이름을 검색해야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현재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YouTube, Spotify, Apple Music, TikTok을 비롯한 글로벌 플랫폼은 이용자가 음악을 발견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 한국 음악을 듣던 사람에게 일본 아티스트의 노래가 추천될 수 있고, 일본 밴드를 듣던 이용자에게 한국 인디 음악이 등장할 수도 있다. 음악을 어느 국가에서 만들었는지가 추천 알고리즘의 첫 번째 기준은 아니다. 이용자가 어떤 멜로디와 장르를 선호하는지, 어떤 영상을 끝까지 보았는지, 어떤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는지가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데 더 중요한 조건이 됐다.
특히 숏폼 콘텐츠의 확산은 언어와 국적의 장벽을 더욱 낮췄다. TikTok이나 Instagram Reels, YouTube Shorts에서 처음 듣는 15초 혹은 30초짜리 음악이 어느 나라 노래인지를 사용자가 처음부터 알 필요는 없다. 멜로디가 마음에 들거나 영상과 음악의 조합이 인상적이면 곡을 찾아보고, 이후 아티스트의 이름을 검색하며 다른 음원과 라이브 영상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과거에는 ‘일본 음악을 찾아 듣는다’는 의식적인 선택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일본 음악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 노래를 먼저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Spotify 역시 일본 음악의 글로벌 확산을 분석하면서 스트리밍이 일본 음악과 해외 청취자를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일본 음악의 해외 소비가 애니메이션과 일부 특정 장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J-POP, 힙합, 시티팝, 보컬로이드 등 더욱 다양한 음악이 글로벌 이용자에게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음악산업 역시 거대한 내수시장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조금씩 벗어나 해외 청취자 데이터를 보다 적극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이러한 글로벌 플랫폼 구조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국내 음악 이용자 조사에서도 YouTube와 YouTube Music을 비롯한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국내 음원 서비스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음악을 발견하고 소비하는 통로가 한두 개의 국내 플랫폼에 집중되던 시기와 비교하면 이용자의 선택지가 크게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일본 음악이 한국 청취자에게 도달하는 비용도 급격히 낮아졌다. 별도의 음반 유통망이나 방송 편성을 확보하지 않아도 YouTube 영상 하나와 스트리밍 음원만으로 한국의 잠재적인 팬에게 음악을 전달할 수 있다. 해외시장 진출을 결정한 뒤 음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먼저 해외로 확산되고, 반응이 확인된 뒤 아티스트가 실제로 그 시장을 찾는 방식이 가능해진 것이다.
애니메이션과 시티팝, 그리고 넓어지는 일본 음악의 입구
한국에서 일본 음악이 알려지는 가장 강력한 통로 가운데 하나는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과 엔딩곡을 통해 일본 가수를 처음 알게 된 한국 팬은 적지 않다.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음악을 계기로 해당 아티스트를 검색하고 다른 노래까지 듣게 되는 방식은 지금도 일본 음악의 해외 확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구조 역시 한 단계 확장되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연결된 한 곡을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취자가 해당 아티스트의 음악세계 전체로 이동한다. OST를 통해 처음 접한 일본 밴드의 정규 음반을 찾아 듣고, 라이브 영상을 본 뒤 내한 공연 티켓을 구입하는 식이다. 애니메이션이 일본 음악을 발견하는 입구인 것은 여전하지만, 그 입구를 통과한 청취자가 과거보다 훨씬 넓은 일본 음악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반대로 애니메이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본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싱어송라이터와 밴드, 팝과 록 등 다양한 장르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독립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일본 음악의 한국 유입을 더 이상 ‘애니메이션 음악의 인기’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여기에 시티팝의 재발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발표된 일본 음악이 YouTube와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수십 년 뒤 전혀 새로운 해외 청취자에게 발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새로운 음악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만이 국제적인 음악 소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발표된 곡도 알고리즘을 통해 현재의 콘텐츠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일본의 과거 음악을 새롭게 발견하는 젊은 청취자가 나타났다. 부모 세대가 알고 있던 일본 음악을 20대와 30대가 다시 듣거나, 일본 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없던 사람이 온라인에서 우연히 과거 곡을 접한 뒤 일본 대중음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도 생겼다. 일본 음악을 소비하는 세대와 장르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J-POP 팬’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한국의 일본 음악 소비자를 묶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서 J-POP이 성장하는 방식이 과거 K-POP이 일본에 진출했던 방식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K-POP의 일본 진출이 기획사와 음반사의 현지화 전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최근 일본 음악의 한국 유입은 온라인에서 자연스럽게 팬이 형성되고 공연시장이 그 뒤를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아티스트가 먼저 국경을 넘고 음악이 그 뒤를 따라갔다면, 지금은 음악이 먼저 국경을 넘고 아티스트가 그 뒤를 따라간다.
‘내한 공연’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해외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은 종종 특별한 이벤트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일본 아티스트의 경우 국내에서 탄탄한 팬층을 가진 일부 록 밴드나 애니메이션 관련 아티스트를 제외하면 한국 공연 자체가 흔하지 않았다. 한 번 한국을 방문해 공연을 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뒤 다음 공연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공연의 빈도가 높아지고 규모가 확대되면 시장의 성격도 달라진다. 한 아티스트의 성공적인 내한 공연은 단순히 공연 한 건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연기획사와 음반사, 매니지먼트 회사는 객석 점유율과 티켓 가격, 관객의 연령층, 굿즈 판매량, 온라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공연장이 적절한지, 어떤 홍보채널에서 반응이 나타나는지, 한국 팬이 어떤 방식으로 티켓을 구입하고 공연을 소비하는지도 데이터로 축적된다.
이러한 데이터가 쌓이면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위험은 줄어든다. 처음에는 수백 명 규모의 공연장에서 시작한 아티스트가 다음 방문에서는 수천 명 규모의 장소를 선택할 수 있고, 공연이 반복되면 서울 외의 지역이나 아시아 투어 전체로 확장할 수도 있다. 팬의 입장에서도 변화가 생긴다. ‘이번에 놓치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는 일회성 이벤트에서 ‘다음 투어에서도 한국이 포함될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 차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음악시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해외 아티스트가 한국을 한 번 방문하는 것과 한국을 정기적인 투어 시장 가운데 하나로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는 이벤트에 가깝지만 후자는 시장의 형성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에서 대형 일본 아티스트의 공연이 연이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King Gnu와 Vaundy, Official髭男dism 등 현재 일본 음악시장에서 높은 영향력을 가진 아티스트가 한국의 대규모 공연장을 선택하는 것은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티켓 수요가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후지이 카제 역시 고척스카이돔과 같은 초대형 공연장에서의 공연을 계획할 수 있는 단계까지 한국 팬덤의 규모가 확대됐다.
한국에서 일본 아티스트의 공연을 바라보는 산업의 계산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은 ‘일본에서 유명한 가수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뉴스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일정한 수요가 존재하는 독립적인 공연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아티스트에게 한국은 어떤 시장인가
그렇다고 일본 음악시장이 작아져 일본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한국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시장 가운데 하나이며, 일본 안에서 충분한 팬덤을 확보한 아티스트라면 국내 활동만으로도 상당한 규모의 음반과 공연 매출을 만들 수 있다. 경제적인 이유만 놓고 보면 모든 일본 아티스트가 반드시 한국으로 진출해야 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최근 한국을 찾는 일본 아티스트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시장의 절대적인 규모 이외의 요소를 함께 봐야 한다. 첫 번째는 상징성이다. K-POP의 세계적인 성장과 함께 서울은 아시아 대중음악 산업에서 상당한 국제적 가시성을 확보했다. 한국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국 팬을 만나는 것을 넘어 아시아 시장에서 해외 활동의 경험을 쌓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두 번째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연결성이다. 한국의 음악 팬은 YouTube, Instagram, TikTok 등 글로벌 플랫폼 이용에 익숙하고 공연 현장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환경을 갖고 있다. 공연을 본 관객이 촬영한 짧은 영상이나 공식 라이브 클립이 새로운 팬을 만들 수 있고, 이러한 반응이 다시 다른 국가로 확산될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지리적인 접근성이다. 한국과 일본은 항공편으로 몇 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다. 북미나 유럽을 대상으로 한 투어와 비교하면 이동 비용과 체류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일본 서부 지역과 한국은 거리상 상당히 가깝고, 후쿠오카와 부산처럼 일상적인 관광 이동이 활발한 지역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스트리밍 데이터에서 한국 청취자가 증가하고 공연 티켓이 판매된다면 아티스트와 기획사 입장에서도 한국을 방문할 이유가 생긴다. 과거에는 해외시장의 반응을 추측해야 했다면 지금은 Spotify와 YouTube, SNS를 통해 어느 나라에서 자신의 음악을 얼마나 듣고 있는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를 통해 한국 청취자의 증가가 확인되면 그 다음 단계로 공연을 검토할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 한국은 일본 아티스트에게 미국이나 유럽으로 향하기 전에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첫 해외시장으로 기능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인디 아티스트에게 서울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하면서도 완전히 낯선 시장은 아니다. 반대로 한국 인디 아티스트에게 일본 역시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거대 음악시장이다. 양국이 서로에게 첫 해외무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일본 아티스트들
한일 음악 교류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언어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한국 가수가 일본 팬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장면이었다. 일본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 공연에서 현지 언어로 MC를 준비하며, 일본어 음반을 별도로 제작하는 것은 한국 아티스트의 해외 활동에서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반대 방향의 모습도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한국 공연을 위해 간단한 한국어 인사를 준비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어를 지속적으로 공부하거나 한국 노래를 부르고, 한국 팬과 SNS에서 직접 소통하려는 일본 아티스트가 나타나고 있다. 아직 이러한 사례의 규모를 과거 한국 아티스트의 일본 진출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방향이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언어는 문화교류에서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팬은 반드시 모든 가사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K-POP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도 한국어라는 언어가 결정적인 장벽이 되지는 않았다. 음악과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먼저 좋아하게 된 해외 팬이 이후 가사의 의미를 찾아보고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 일본 음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 팬이 일본어 가사를 그대로 따라 부르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한다. 반대로 한국 팬과 더 가까이 소통하기 위해 일본 아티스트가 한국어를 공부한다. 음악이 언어에 대한 관심을 만들고, 언어가 다시 아티스트와 팬의 거리를 좁히는 순환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정부나 기관이 별도의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아도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게 만들 수 있다. 대중문화가 만드는 교류의 힘은 바로 이러한 일상적인 변화에서 나타난다.
대형 공연장 아래에서 벌어지는 더 작은 움직임
한일 음악 교류를 대형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만으로 바라보면 전체 풍경의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레나와 돔 아래에는 수백 명 규모의 라이브하우스가 있고, 그 아래에는 수십 명의 관객을 앞에 둔 작은 무대가 존재한다. 아직 한국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일본 싱어송라이터가 처음으로 서울 공연을 열기도 하고, 한국의 인디 밴드가 일본의 소규모 라이브하우스를 찾아 현지 관객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통계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형 공연처럼 언론의 주목을 받기 어렵고 티켓 판매량 역시 산업 전체를 움직일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문화교류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미 수만 명의 팬을 보유한 정상급 아티스트가 해외 공연을 여는 것과 아직 해외 기반이 없는 아티스트가 새로운 청중을 만나기 위해 직접 국경을 넘는 것은 서로 다른 종류의 교류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공연 자체가 시장 개척 과정이다. 한국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일본 아티스트가 작은 공연장에서 처음 노래하고, 그 가운데 일부 관객이 SNS에 영상을 올린다. 영상을 본 다른 사람이 아티스트를 검색하고 음악을 듣는다. 다음 한국 공연에서는 첫 공연보다 조금 더 많은 관객이 찾아온다. 규모는 작지만 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일본 싱어송라이터 **카노우 미유(叶望まゆ)**다. OWL Magazine이 앞서 그의 음악 인생을 다룬 기사에서 살펴봤듯, 카노우 미유는 일본에서 자신의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에 한국과의 접점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한국에서 공연하고 한국 노래를 부르며,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팬과 소통하려는 모습은 최근 나타나는 작은 규모의 한일 음악 교류를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카노우 미유의 사례가 의미 있는 것은 그가 한국에서 거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정상급 J-POP 스타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아직 해외시장을 거대한 산업 시스템을 통해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개인 아티스트도 한국이라는 새로운 무대를 직접 경험하고 팬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거 해외 진출은 대형 기획사와 음반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아티스트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선택지였다. 현지 음반사를 찾고 방송과 공연을 연결하며 프로모션 예산을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인 아티스트도 SNS를 통해 해외 팬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자신의 공연 영상을 공개하고 해외 팬의 댓글에 답하며, 팬이 촬영한 라이브 영상 하나를 통해 새로운 나라의 청취자를 확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작은 사례를 바라볼 때 특정 아티스트 한 명의 성공 여부만을 기준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형 아티스트의 움직임이 이미 형성된 시장의 크기를 보여준다면, 작은 아티스트의 이동은 앞으로 시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일 음악 교류를 표방하는 공연들이 늘어나는 이유
시장 변화는 공연기획에도 반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 아티스트를 같은 무대에 세우거나 양국 음악 교류를 전면에 내세우는 공연과 페스티벌이 꾸준히 기획되고 있다. 2026년 10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개최될 예정인 Xnterstellar Music Festival 2026(XMF 2026) 역시 이러한 흐름 가운데 하나다.
공개된 라인업에는 Ado, 나카시마 미카, ONE OK ROCK, My Hair is Bad, Novelbright 등 일본 아티스트와 DAY6, 윤하, FTISLAND, LUCY, YB 등 한국 아티스트가 포함됐다. 주최 측은 단순한 합동 공연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음악을 연결하는 문화교류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으며, 향후 양국을 오가는 형태로 행사를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밝힌 바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페스티벌 하나의 성공 여부가 아니다. 이 정도 규모의 한국과 일본 아티스트를 한 행사에 배치하는 기획 자체가 현재의 시장환경에서 사업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K-POP을 소비하는 팬과 한국에서 J-POP을 소비하는 팬이 동시에 존재하고, 양국의 음악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공연이 가능해진다.
다만 한국 아티스트와 일본 아티스트를 같은 포스터에 배치하는 것만으로 문화교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만 보고 돌아간다면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두 공연을 같은 장소에서 진행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진정한 의미의 음악 교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관객의 이동이 필요하다. K-POP을 보러 온 관객이 처음 접하는 일본 밴드의 무대를 보고 음악을 찾아 듣거나, 일본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행사장을 방문한 사람이 한국 밴드의 새로운 팬이 되어야 한다. 아티스트끼리 서로의 곡을 부르거나 협업하고, 공연 이후에도 관계가 이어진다면 교류의 의미는 더 커질 수 있다.
앞으로 한일 합동 공연과 페스티벌을 평가할 때도 단순히 얼마나 유명한 아티스트가 출연했는지만 볼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팬덤 사이에서 실제로 새로운 음악이 발견됐는지, 아티스트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졌는지, 행사 이후에도 양국을 오가는 활동으로 연결됐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대형 아티스트에게는 길이 있지만, 그 아래에는 공백이 있다
현재 한일 음악 교류의 구조에는 분명한 한계도 존재한다. 이미 유명한 아티스트에게 해외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은 비교적 잘 만들어져 있다. 대형 공연기획사가 있고 글로벌 티켓 플랫폼이 있으며, 현지 프로모터와 음반사도 존재한다. 어느 정도의 수요만 확인되면 공연장을 확보하고 티켓을 판매하며 투어 일정을 구성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아래 단계에 있는 아티스트다. 일본에서 수십 명이나 수백 명 규모의 관객을 모으는 싱어송라이터가 처음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는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다. 한국에서 자신의 음악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어떤 공연장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알기 쉽지 않다. 공연장 섭외와 티켓 판매, 홍보, 현장 운영, 촬영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해결해야 할 수도 있다.
언어 문제도 있다. 계약과 공연장 예약 과정에서 통역이 필요할 수 있고, 한국 팬에게 공연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별도의 홍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에서 어느 정도 활동 경험이 있는 아티스트라 하더라도 한국시장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첫 공연 자체가 상당한 위험 부담이 된다.
한국 인디 아티스트가 일본에서 공연하려 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라이브하우스 시스템과 티켓 판매 방식, 현지 공연문화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하고, 자신을 모르는 일본 관객에게 어떻게 음악을 소개할지 고민해야 한다. 대형 K-POP 아티스트가 돔 투어를 하는 모습만 보면 한국과 일본의 음악시장 사이에 국경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작은 아티스트에게 국경은 여전히 상당히 높은 장벽이다.
이 지점에서 한일 음악시장 사이에 비어 있는 ‘중간 다리’가 보인다. 대형 아티스트에게는 글로벌 프로모터가 있고, 완전한 신인에게는 SNS가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면서 아직 해외 공연을 독자적으로 조직하기 어려운 아티스트가 새로운 시장을 시험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중간 단계의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작은 공연장과 해외 아티스트를 연결하고, 공연을 촬영해 콘텐츠로 만들고, 이를 다른 나라의 팬에게 소개한 뒤 반응이 확인된 아티스트에게 다음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음악이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단순히 공연을 한 번 개최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를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공연장이 미디어가 되고 팬이 유통망이 되는 시대
이러한 가능성이 과거보다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공연의 역할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공연장은 음악 소비의 최종 목적지에 가까웠다. 음반이나 방송을 통해 아티스트를 알게 된 사람이 팬이 된 뒤 티켓을 구입해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에 오기 전에 이미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였다.
지금은 공연장이 새로운 팬을 만드는 시작점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한 번의 라이브 공연에서 수십 개의 짧은 영상이 만들어지고, 이를 YouTube Shorts와 TikTok, Instagram Reels를 통해 공연장을 찾지 않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우연히 영상을 본 이용자가 아티스트 이름을 검색하고, 음원을 듣고, SNS를 팔로우한 뒤 다음 공연에서는 실제 관객이 되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특히 해외 활동을 시작하는 소규모 아티스트에게 이 구조는 중요하다. 첫 한국 공연에 100명의 관객이 찾아왔다는 것보다 그 공연에서 만들어진 영상이 온라인에서 수만 명에게 도달했다는 사실이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데 더 큰 자산이 될 수도 있다. 공연은 더 이상 현장에 온 사람만을 위한 콘텐츠가 아니다.
공연장이 하나의 미디어가 되고, 관객은 콘텐츠의 소비자인 동시에 유통자가 된다. 과거에는 방송국과 음반사가 결정했던 노출의 상당 부분이 팬의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이루어진다. 어떤 영상이 예상하지 못한 국가에서 확산되고 새로운 팬덤을 만들지 미리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작은 아티스트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이 변화는 문화교류의 주체 역시 확대했다. 과거 국제 문화교류는 정부기관과 방송사, 대형 기업이 기획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 간 문화행사를 개최하거나 방송 프로그램을 교환하고 해외 음반을 정식으로 유통하는 방식이었다.
현재는 팬 개인도 문화교류의 주체가 된다. 한국 팬이 일본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번역하고, 일본 팬이 한국 가수의 영상을 소개한다. 공연 영상을 직접 촬영해 공유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팬 한 명이 만든 영상이 공식 광고보다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던 구조에서 수많은 작은 연결이 동시에 만들어지는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연결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하나의 시장이 된다.
음악은 결국 사람을 이동시킨다
한일 음악 교류는 스트리밍과 공연시장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팬이 실제로 국경을 넘기 시작하면 관광과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준다. 한국 팬에게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본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일본 팬에게 서울 역시 K-POP 공연과 팬미팅을 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찾는 도시가 된다.
공연을 목적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한 사람은 항공권과 숙박비를 지출하고 공연장 주변에서 식사를 하며 쇼핑을 한다. 공연 일정에 맞춰 며칠간 여행하는 경우도 많다. 음악 콘텐츠가 실제 사람의 이동을 만들어 관광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K-POP의 성장 과정에서 이러한 현상은 이미 충분히 확인됐다. 해외 팬이 한국 콘서트와 팬미팅을 보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방문했던 장소와 촬영지를 여행하는 현상은 하나의 관광문화가 됐다. 일본에서도 한국 아티스트의 돔 공연을 보기 위해 다른 지역이나 해외에서 팬이 이동한다.
J-POP의 한국 공연시장이 커진다면 반대 방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대될 수 있다. 일본 아티스트의 한국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 팬이 서울을 방문할 수도 있고, 한국 팬이 일본 현지 공연을 경험한 뒤 지방 도시까지 이동할 수도 있다. 음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도시가 다음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문화교류를 단순히 ‘서로의 음악을 듣는다’는 수준에서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은 언어를 배우게 만들고,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을 만들며, 결국 사람의 이동까지 만들어낸다.
‘한국 진출’과 ‘일본 진출’이라는 표현이 낡아질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가 계속된다면 장기적으로는 ‘한국 진출’이나 ‘일본 진출’이라는 표현 자체가 지금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진출이라는 말에는 분명한 출발점과 목적지가 존재한다. 한국에서 성공한 뒤 일본으로 이동하고, 일본에서 성공한 뒤 한국으로 이동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에게 시장은 점점 그렇게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도쿄에서 제작한 음악을 서울의 팬이 발표 당일 듣고, 한국에서 촬영된 공연 영상이 일본 팬에게 전달된다. 서울에서 공연한 뒤 며칠 후 후쿠오카에서 무대에 설 수 있고, 팬은 어느 나라에 거주하는지와 관계없이 같은 SNS 계정을 통해 아티스트와 연결된다.
국적은 일본이지만 팬이 반드시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아티스트 역시 한국 팬만을 대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음악산업의 단위가 국가에서 팬덤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과정이 더욱 발전하면 한국시장과 일본시장의 사이에 하나의 새로운 활동권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두 나라의 음악산업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뜻은 아니다. 언어도 다르고 방송 환경과 공연문화, 팬덤의 소비방식에도 여전히 차이가 크다.
다만 일정 규모 이하의 아티스트가 서울과 도쿄, 오사카와 후쿠오카를 하나의 활동권으로 묶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일본의 한 도시에서 100명의 팬을 확보하는 것과 서울과 도쿄, 후쿠오카에서 각각 100명의 팬을 확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성장경로를 만든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국가를 넘나드는 팬층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남은 것은 오프라인 무대가 그 흐름을 얼마나 빠르게 따라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K-POP이 만든 길 위로 J-POP도 움직인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역설도 있다. 한국에서 J-POP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K-POP의 세계화가 일정 부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K-POP은 한국 음악산업 자체를 글로벌 네트워크 속으로 끌어들였고, 한국의 소비자 역시 외국어 콘텐츠와 해외 공연을 접하는 데 훨씬 익숙하게 만들었다.
한국 음악산업은 해외 팬을 대상으로 다국어 콘텐츠를 제작하고 글로벌 티켓을 판매하며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팬과 소통하는 방식을 일상적인 산업활동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공연장 역시 해외 관객과 아티스트를 상대하는 경험을 축적했다. 한국 팬 역시 국내 방송이나 음원차트만을 통해 음악을 소비하지 않고 해외 플랫폼과 SNS에서 새로운 음악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결국 K-POP이 국경을 넘기 위해 만들어놓은 디지털 인프라와 소비문화는 다른 나라 음악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글로벌 플랫폼에서 한국 팬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한국 아티스트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아티스트 역시 같은 YouTube와 Spotify, TikTok을 통해 한국 청취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문화의 흐름은 일방통행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 음악이 일본을 거쳐 세계로 확장되는 동안 한국 소비자 역시 이전보다 훨씬 국제적인 음악 환경에 익숙해졌고, 그 결과 일본을 포함한 해외 음악이 한국에 들어오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일본 음악산업 내부에서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거대한 내수시장 덕분에 해외 진출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시장으로 평가됐다. 일본 안에서 음반을 판매하고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업규모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리밍 시대에는 해외 청취자의 존재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아티스트가 별도의 해외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았는데도 한국이나 동남아시아, 미국에서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가 쌓이면 해외 공연과 프로모션을 검토할 근거가 생긴다.
K-POP이 일본에서 성공한 경험이 한일 음악교류의 첫 번째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면, 글로벌 스트리밍 시대의 J-POP은 그 길을 반대 방향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셈이다.
경쟁보다 연결을 봐야 하는 이유
한국과 일본의 대중문화는 오랫동안 비교와 경쟁의 대상으로 다뤄졌다. 어느 나라 음악시장이 더 큰가, K-POP과 J-POP 가운데 무엇이 세계적으로 더 성공했는가, 어느 쪽의 제작 시스템이 더 앞서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지금도 자주 등장한다.
산업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비교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K-POP의 성공이 반드시 J-POP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일본 음악의 소비가 증가한다고 해서 한국 음악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음악 소비자는 하나의 장르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같은 사람이 한국 음악과 일본 음악, 미국 팝과 인디 음악을 동시에 들을 수 있다.
오히려 한국 팬이 일본 음악을 더 많이 듣고 일본 팬이 한국 음악을 더 많이 들을수록 두 시장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수는 늘어난다. 한국 공연을 경험한 일본 아티스트가 다시 한국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일본 공연에서 새로운 팬을 확보한 한국 인디 밴드가 다음 투어를 준비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일 음악시장의 변화를 바라볼 때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이겼는가’보다 ‘두 시장이 연결되면서 무엇이 새로 만들어지는가’에 가까울 수 있다.
정상급 스타보다 작은 무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현재 한국에서 열리는 일본 정상급 아티스트의 공연은 J-POP 시장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지표다. 수천 명 또는 수만 명 규모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팬층이 존재한다는 뜻이며, 이는 향후 더 많은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을 촉진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앞으로 어디로 움직일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보다 작은 무대를 볼 필요가 있다.
처음 한국을 찾는 일본 싱어송라이터, 일본의 작은 라이브하우스에서 첫 해외 공연을 하는 한국 밴드, 한국어 노래를 연습하는 일본 가수, 일본어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한국 인디 아티스트, 수십 명의 관객 앞에서 시작한 공연이 SNS를 통해 수천 명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대형 공연과는 다른 종류의 변화를 보여준다.
카노우 미유의 한국 활동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가 거대한 한일 음악교류의 중심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거대한 변화가 얼마나 작은 단위까지 내려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직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가 해외 팬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대형 기획사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포함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 음악과 영상이 먼저 국경을 넘고 팬이 생기면, 작은 아티스트 역시 직접 새로운 시장을 경험해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수십 명, 수백 명의 아티스트에게 반복된다면 몇 년 뒤 한일 음악시장의 풍경은 지금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20여 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
2004년 일본 대중음악이 한국에 전면적으로 개방될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 음악산업의 영향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일본의 거대한 콘텐츠가 한국으로 들어오면 국내 음악시장이 밀릴 수 있다는 우려였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의 풍경은 당시의 예상과 상당히 다르다. 일본에서는 한국 가수의 노래를 일본 팬들이 한국어로 따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일본 가수의 노래를 한국 팬들이 일본어로 따라 부른다. 한국 아티스트가 일본의 돔 공연장을 채우고 일본 아티스트가 서울의 대형 공연장에 선다.
한국 가수가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 가수가 한국어를 공부한다. 한국 팬이 일본 공연을 보기 위해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로 이동하고 일본 팬은 한국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같은 아티스트의 SNS 게시물 아래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 댓글이 동시에 달린다.
과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논의할 때 전제됐던 ‘우리 문화’와 ‘외국 문화’의 경계는 지금의 음악 소비자에게 훨씬 희미해졌다. 콘텐츠의 국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음악을 듣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첫 번째 조건은 더 이상 아니다.
20여 년 전에는 한국이 일본 음악에 문을 열었다. 이후 예상과 달리 한국 음악이 일본으로 빠르게 이동했고 K-POP은 일본 음악시장의 중요한 한 축이 됐다. 그리고 이제 일본 음악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번에는 방식도 다르다. 정부가 새로운 개방 조치를 발표한 것도 아니고 음반사가 대규모 수출 전략을 먼저 세운 것도 아니다. 온라인에서 음악이 먼저 발견되고 팬이 생긴다. 팬의 반응이 공연 수요를 만들고 아티스트가 그 뒤를 따라 움직인다.
다음 단계는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구조다
이제 질문은 J-POP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일정 부분에서는 이미 성장하고 있다는 수치와 공연시장의 변화가 확인되고 있다. 2026년 상반기 국내 J-POP 스트리밍은 전년 동기보다 크게 증가했고, 일본 주요 아티스트들의 한국 공연 규모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앞으로 더 중요한 질문은 이러한 관심이 지속 가능한 교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몇몇 유명 일본 아티스트의 대형 내한 공연에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중견과 신인 아티스트까지 서로의 시장을 오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것인지에 따라 한일 음악교류의 다음 단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일 합동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양국의 유명 아티스트를 한 무대에 세우는 데 그칠 것인지, 실제로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고 서로 다른 팬덤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공연 한 번으로 끝나는 이벤트보다 공연과 촬영, 콘텐츠 유통, 다음 공연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지속적인 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대형 아티스트의 국경은 이미 상당히 낮아졌다. 그러나 작은 아티스트에게 국경은 여전히 높다. 앞으로 한일 음악교류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바로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작은 공연장과 아티스트를 연결하고,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하며, 그 콘텐츠를 다른 나라의 잠재적인 팬에게 보여주고, 반응이 확인되면 다음 무대로 연결하는 구조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공연기획이 아니라 아티스트를 발견하고 국경을 넘어 성장시키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플랫폼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한국과 일본의 음악 교류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층위에서 일어날 수 있다. 정상급 스타의 아레나 공연뿐 아니라 새로운 싱어송라이터와 밴드가 서로의 도시를 오가는 풍경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K-POP만 일본으로 가는 시대는 끝났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일 음악 교류에서 가장 강력한 흐름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향했다. 한국 가수들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의 일본 음악시장을 꾸준히 두드렸고,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 안에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었다. 초기에는 일본어 음반과 현지 프로모션을 앞세운 철저한 현지화가 필요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K-POP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경쟁력을 갖게 됐다. 오늘날 일본에서 K-POP은 더 이상 낯선 해외 음악이나 일시적인 유행으로 보기 어렵고, 주요 음원차트와 공연시장, 팬덤 문화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하나의 음악산업 영역이 됐다.
이 흐름은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아티스트에게 일본은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해외시장 가운데 하나이며, 일본 팬에게도 K-POP은 이미 익숙한 대중문화다. 다만 지금 주목해야 할 변화는 기존의 흐름이 약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상대적으로 희미했던 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이 늘어나고, 한국 팬이 일본어 노래를 자연스럽게 듣고 공연장에서 따라 부르며, 일부 일본 아티스트는 한국 팬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무대에 반복적으로 서기 시작했다. 양국의 아티스트가 같은 공연과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온라인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팬이 같은 음악을 거의 동시에 소비하는 풍경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물론 두 방향의 흐름이 이미 같은 규모에 도달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에서 K-POP이 구축한 시장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형 기획사와 현지 음반사, 방송, 공연산업이 함께 만들어온 결과다. 반면 한국의 J-POP 시장은 최근 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형성 과정에 가깝다. 따라서 지금의 변화를 근거로 두 시장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평가하거나, J-POP이 한국 대중음악시장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과장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의 규모가 더 큰가가 아니라,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만 보였던 음악의 이동이 이제 분명하게 양방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20여 년 전 한국은 제도적인 결정을 통해 일본 대중문화에 문을 열었다. 당시에는 일본의 거대한 문화산업이 한국시장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이후 실제로 가장 강하게 움직인 것은 오히려 반대 방향이었다. 한국 음악과 드라마가 일본으로 향했고, K-POP은 일본 음악시장 안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 지금, 일본 음악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한일 대중음악의 역사는 한쪽 문화가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밀어내는 과정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기에 방향과 방식이 바뀌며 반복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아온 과정에 더 가깝다.
특히 현재의 변화는 과거와 음악이 국경을 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에는 음반사와 방송사, 대형 기획사가 해외진출의 길을 먼저 만들고 그 위로 아티스트와 음악이 이동했다. 현지 음반을 제작하고 방송에 출연하며 대규모 프로모션을 진행해야 새로운 나라의 청중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음악이 먼저 움직인다. 스트리밍 플랫폼과 SNS를 통해 한 곡의 음악이나 짧은 라이브 영상이 국경을 넘고, 이를 통해 팬이 생긴 뒤 실제 공연과 아티스트의 이동이 뒤따른다. 과거의 해외진출이 산업의 결정에서 시작됐다면, 현재는 청취자의 발견과 팬의 반응이 먼저 시장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대형 아티스트보다 오히려 작은 무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서울의 작은 공연장에서 처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일본 싱어송라이터, 일본의 라이브하우스에서 처음 현지 관객을 만나는 한국 밴드, 그 무대를 촬영해 온라인에 소개하는 관객, 그리고 우연히 영상을 본 뒤 처음으로 아티스트의 이름을 검색하는 다른 나라의 청취자는 모두 이전에는 존재하기 어려웠던 연결 구조의 일부다. 각각의 움직임은 작아 보이지만,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특정 국가에서 이미 유명해진 아티스트만 해외에 진출하는 기존 구조와는 다른 성장경로가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일 음악 교류의 가능성을 판단할 때는 대형 아레나와 돔 공연의 숫자만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가 서로의 나라에서 첫 무대를 만들 수 있는지, 그 공연이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팬에게 전달되는지, 그리고 한 번의 방문이 다음 공연과 협업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대형 아티스트의 공연은 이미 형성된 시장의 현재 크기를 보여주지만, 작은 공연장에서 시작되는 반복적인 교류는 앞으로 그 시장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음악시장이 서로 연결되면서 만들어지는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어느 한쪽이 상대의 시장을 빼앗는 데 있지 않다. 한국 아티스트에게 일본 팬이 있고 일본 아티스트에게 한국 팬이 존재하며, 팬들이 직접 국경을 넘어 공연을 찾고 온라인에서 서로의 음악을 발견하는 과정이 쌓이면서 두 나라 사이에 과거에는 분명하게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활동공간이 형성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로 통합된 시장도 아니고 기존의 한국시장이나 일본시장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국적을 유지하면서도 활동영역과 팬덤이 국경을 넘어가는, 두 음악시장 사이의 새로운 중간지대에 가깝다.
지난 20여 년의 흐름을 돌아보면 한일 음악 교류의 방향은 계속 달라져 왔다.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개방됐고, 그 뒤 한국 음악이 일본으로 향했으며, 이제 일본 음악 역시 한국에서 새로운 청중을 만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 흐름이 얼마나 큰 시장으로 성장할지, 일시적인 관심을 넘어 지속적인 공연과 아티스트 교류로 이어질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전과 달리 이제는 음악과 팬, 아티스트가 양쪽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K-POP만 일본으로 가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J-POP이 대신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느 한쪽만 다른 나라로 이동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음악은 이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동시에 흐르고 있으며, 앞으로 한일 음악 교류의 다음 장은 그 두 흐름이 어디에서 만나고 어떤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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