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공원 일대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대표적인 사찰이 있다. 바로 “고후쿠지(興福寺)”이다. 우리식 독음으로는 “흥복사”라고 읽을 수 있는 곳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사찰 가운데 하나이자,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오층탑이 있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사루사와 연못에서 바라보는 고후쿠지 오층탑의 모습은 나라를 대표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고후쿠지는 단순히 관광지로만 유명한 사찰이 아니라, 일본 고대 권력 구조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는 장소이다. 후지와라 가문의 중심 사찰로 성장했던 곳으로, 헤이안 시대에 섭정 가문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후지와라 일족의 비호를 받으며 오랜 시간 번성했다. 과거에는 170여 채에 이르는 건물이 있었을 정도로 거대한 사찰이었다고 하지만, 전란과 화재를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현재는 10여 개 정도의 주요 건물만 남아 있다.


원래는 교토에 있었다가 나라로 옮겨온 사찰
고후쿠지의 기원은 현재의 나라가 아니라, 오늘날 교토시에 해당하는 야마시로국 야마시나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672년에는 일본 최초의 계획 수도였던 후지와라쿄로 이전되었고, 710년 헤이조쿄, 즉 지금의 나라로 수도가 옮겨지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 수도의 이동과 함께 사찰 역시 옮겨온 셈인데, 이 과정 자체가 고후쿠지가 당시 권력 중심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후쿠지는 후지와라씨의 후견 사찰로서 큰 영향력을 가졌다. 수도가 헤이안쿄로 옮겨진 이후에도 도다이지와 같은 남도 사찰들이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는 과정 속에서, 고후쿠지는 후지와라 가문과의 관계 덕분에 계속해서 중요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단순한 불교 사찰을 넘어 정치적·문화적 중심지 역할까지 함께 했던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긴 세월 동안 고후쿠지는 여러 차례 화재와 전란을 겪었다. 그래서 과거의 거대한 규모가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다. 세 개의 금당 중 일부는 아직 재건되지 못했고, 남대문과 중문 역시 지금까지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그럼에도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과 보물들만으로도 일본 불교사와 나라 시대의 흔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현재 남아 있는 주요 건축물과 보물들
고후쿠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은 역시 오층탑이다. 높이 약 50m에 달하는 이 탑은 에도 시대 이전에 지어진 목조탑 가운데 교토 도지의 오층탑 다음으로 높은 탑이라고 한다. 처음 세워진 것은 730년이었지만, 이후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탑은 1426년에 재건된 것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아쉽게도 주변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오층탑을 온전히 감상하기는 어려웠다.
그 외에도 동금당(東金堂), 삼층탑(三重塔), 북엔당(北円堂), 남엔당(南円堂) 등 여러 건축물이 남아 있다. 특히 동금당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건축물로, 내부에는 국보와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고후쿠지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건칠팔부중립상, 건칠십대제자립상, 동조불두, 목조금강력사립상 등 수많은 국보급 불교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내 자체는 무료로 둘러볼 수 있지만, 국보관이나 동금당, 중금당 등 일부 시설에 입장하려면 별도의 입장료가 필요하다. 당시 기준으로 국보관은 성인 700엔, 동금당은 300엔, 국보관과 동금당 공통 관람권은 900엔, 중금당은 500엔 정도였다. 필자는 우선 나라공원 전체를 크게 둘러보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모든 건물에 하나하나 들어가기보다는 경내를 중심으로 가볍게 둘러보는 방식으로 방문했다.


수학여행 학생들로 붐비던 나라의 가을
필자가 나라를 여행했던 시기는 9월 말이었다. 이 시기에는 일본 학교에서도 수학여행을 많이 떠나는 듯했는데, 교토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라에서도 학생 단체 인파를 자주 마주할 수 있었다. 고후쿠지에서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단체로 이동하며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입장권을 구입해 각 건물을 하나씩 관람하는 듯했다. 일본 학생들에게 고후쿠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 공부의 현장처럼 여겨지는 장소인 듯했다. 실제로 고후쿠지는 후지와라 가문, 나라 시대, 일본 불교사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현지 학생들이 역사 교육의 일부로 방문하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개인 여행자 입장에서는 어디까지 들어가볼지 고민이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경내만 둘러보아도 주요 건축물은 어느 정도 감상할 수 있었지만, 내부의 국보급 불상과 보물들을 제대로 보려면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다. 일정이 여유롭다면 하나씩 들어가보는 것도 좋겠지만, 나라공원과 도다이지, 가스가타이샤까지 함께 둘러볼 계획이라면 시간을 잘 조절해야 할 것 같았다.


고후쿠지 주변에서 만난 사슴들
나라공원 일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역시 사슴이다. 고후쿠지 주변에서도 사슴을 볼 수 있었는데, 도다이지 방향처럼 많은 수가 한꺼번에 몰려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경내 근처에서 한두 마리씩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사슴이 사람들 가까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모습이 상당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라공원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다보면, 사슴이 한두 마리가 아니라 무리 단위로 나타나는 장소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신기하게 느껴졌던 사슴의 존재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만큼 나라라는 도시는 사람과 사슴이 함께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고후쿠지는 그런 나라공원의 분위기를 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지나가게 되는 중요한 지점처럼 느껴졌다. 사루사와 연못에서 고후쿠지 오층탑을 바라보고, 다시 경내를 지나 나라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점점 더 넓은 나라의 풍경이 펼쳐진다. 오층탑 공사로 인해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라 여행의 흐름 속에서 고후쿠지는 충분히 의미 있는 장소였다.

나라공원 여행의 출발점 같은 사찰
고후쿠지는 도다이지처럼 압도적인 규모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사찰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라공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사루사와 연못과 함께 나라의 대표적인 경관을 만들어내는 장소라는 점에서 여행 동선상 반드시 한 번은 지나치게 되는 곳이다. 특히 일본 고대 귀족 가문인 후지와라씨와 깊게 연결된 사찰이라는 점을 알고 방문하면,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가 더해진다.
이번 방문에서는 오층탑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공사만 아니었다면 사루사와 연못에서 반영되는 오층탑의 모습과 경내에서 바라보는 탑의 존재감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고후쿠지는 나라 여행의 첫 흐름을 만들어주는 장소로서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나라공원을 여행한다면 고후쿠지는 사루사와 연못, 우네메 신사, 도다이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동선 안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둘러보기에 좋은 장소이다. 경내만 가볍게 둘러보아도 좋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국보관과 동금당까지 함께 관람하면서 나라 불교문화의 깊이를 조금 더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나라공원, 고후쿠지(興福寺)
- 📍 주소 : 48 Noboriojicho, Nara, 630-8213, Japan
- 📞 전화번호 : +81-742-22-7755
- 🌐 홈페이지 : http://www.kohfukuji.com/
- 🕒 운영시간 : 09:00 – 17:00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