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 Lab 스페셜 인터뷰와 최근 활동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카노우 미유의 성장기
오늘날 카노우 미유(かのうみゆ)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한일 프로젝트 오디션 프로그램 ‘트롯걸즈 재팬’을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고, 현재는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을 병행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카노우 미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훨씬 이전의 시간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모습 뒤에는 어린 시절 처음 기타를 손에 쥐었던 순간, 작은 라이브 무대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시간, 그리고 수없이 반복된 도전과 좌절 속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긴 여정이 있었다. 지금의 카노우 미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신의 음악을 지켜 온 결과였다.
카노우 미유는 미에현에서 태어나 네 살 무렵 가족과 함께 후쿠오카현 오무타시로 이주했다. 이후 어린 시절 대부분을 오무타에서 보내며 음악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곳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스스로를 후쿠오카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이유 역시 그의 성장 과정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카노우 미유가 처음부터 ‘가수’보다 ‘싱어송라이터’를 꿈꿨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것에 만족하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직접 멜로디와 가사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열 살 무렵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 작곡에 흥미를 느꼈고, 그때부터 시작된 창작은 훗날 수십 곡의 오리지널 곡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의 길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상경 이후에도 크고 작은 오디션에 도전했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과 창작이 멈춘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다시 기타를 들었고,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이어 온 시간이 지금의 카노우 미유를 만들었다.
이번 기사는 Frag Lab의 스페셜 인터뷰 3부작과 공개된 인터뷰, 공식 프로필 등을 바탕으로 카노우 미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는지를 되짚어 본 기록이다. 단순히 활동 이력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음악과 삶을 따라가며 지금의 카노우 미유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
제1장. 미에현에서 후쿠오카로…음악과 처음 만난 시간
카노우 미유는 미에현에서 태어나 네 살 무렵 가족과 함께 후쿠오카현 오무타시로 이주했다. 이후 성장 과정 대부분을 후쿠오카에서 보냈으며, 지금도 자신을 소개할 때는 자연스럽게 ‘후쿠오카 출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현재의 음악 인생을 이야기할 때도 출발점은 언제나 후쿠오카다.
어린 시절의 카노우 미유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음악을 좋아했지만,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미국의 TV 드라마 ‘시크릿 아이돌 한나 몬타나(Hannah Montana)’였다. 평범한 학생과 무대 위 가수라는 두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린 카노우 미유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후 노래와 춤을 스스로 익히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노래하는 사람, 다시 말해 싱어송라이터에 더 가까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 멜로디와 가사로 표현하는 일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열 살 무렵 찾아왔다. 카노우 미유는 이 시기 처음 어쿠스틱 기타를 손에 들었고, 연주를 배우는 것과 동시에 오리지널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떠오르는 멜로디를 녹음하고, 짧은 가사를 적어 보며 자신만의 노래를 하나씩 완성해 나갔다. 지금은 50곡이 넘는 자작곡을 보유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 시작은 바로 이 시기의 작은 습작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작곡이 특별한 목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놀이처럼 시작됐다는 것이다. 기타를 배우다 보니 직접 멜로디를 만들어 보고 싶었고, 멜로디가 생기니 가사를 붙여 보고 싶었다. 그렇게 완성된 노래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라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는 일기와도 같았다.
이러한 창작 습관은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발표한 ‘검은심장’이나 ‘Re:Road’처럼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풀어낸 곡들도 결국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창작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시간이 흐르며 음악적 표현은 성숙해졌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제2장. 열한 살, 무대가 놀이터가 되다
기타를 손에 쥔 지 1년쯤 지났을 무렵, 카노우 미유는 연습실이 아닌 무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열한 살이던 그는 이미 후쿠오카 시내에서 라이브 활동을 시작했다. 초등학생이 기타를 메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카노우 미유에게 무대는 두려운 공간이라기보다,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장 솔직하게 들려줄 수 있는 장소였다.
처음부터 큰 공연장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작은 라이브 무대와 지역 공연을 하나씩 경험하며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느끼는 시간이 반복됐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또 다른 곡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곡을 쓰고, 무대에서 부르고, 다시 새로운 곡을 만드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일상이 되어 갔다.
어린 나이에도 그의 관심은 늘 ‘무대를 어떻게 즐길까’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곡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무대에 설수록 자연스럽게 자작곡의 비중도 늘어났다.
싱어송라이터에게 무대는 단순히 노래를 들려주는 장소가 아니다. 책상 앞에서 만든 음악이 처음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공간이다. 관객의 반응은 다음 곡을 쓰는 영감이 되고, 무대에서 느낀 감정은 또 다른 가사가 된다. 카노우 미유 역시 이러한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반복하며 조금씩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갔다.
후쿠오카가 키운 싱어송라이터
후쿠오카는 일본에서도 라이브 문화가 활발한 도시 가운데 하나다. 대형 공연장만이 아니라 라이브하우스와 지역 음악 축제가 꾸준히 열리면서, 신인 뮤지션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무대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카노우 미유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단순히 노래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관객 앞에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는 경험을 반복하며 무대 감각을 익혔다.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서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이는 훗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는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그의 이름이 지역 음악 관계자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점보다 직접 만든 노래를 기타 하나로 소화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자신만의 음악을 가진 아티스트로 기억되기 시작한 것이다.
‘뮤직 시티 텐진’이 남긴 경험
카노우 미유의 성장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대가 있다. 바로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 ‘뮤직 시티 텐진(Music City Tenjin)’이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이 행사에 꾸준히 출연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젊은 싱어송라이터 가운데 한 명으로 성장했다. ‘뮤직 시티 텐진’은 프로와 아마추어, 메이저와 인디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후쿠오카 최대 규모의 음악 축제로 알려져 있다. 이 무대에 꾸준히 선다는 것은 단순히 공연 횟수를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무대 규모가 커질수록 관객도 다양해졌다. 우연히 발걸음을 멈춘 시민부터 음악 관계자까지,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노래를 들려줄 기회가 생겼다. 카노우 미유에게는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전달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시기 그는 단순히 공연만 반복한 것이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는 어떻게 무대를 만들어 가야 하는가’를 몸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어떤 곡이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지, 무대 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익혀 갔다.
무대보다 더 소중했던 것은 ‘계속 노래하는 것’
돌이켜 보면 카노우 미유의 10대는 화려한 성공보다 꾸준한 경험으로 채워져 있었다. 전국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전이었고, 지금처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던 시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또래 친구들이 학교생활을 보내던 시간에 공연장을 오가고, 기타를 메고 무대에 서며 자신의 음악을 조금씩 쌓아 가고 있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도 반복해서 드러난다. 카노우 미유에게 음악은 갑자기 찾아온 기회가 아니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이어 온 삶의 일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쉽게 음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훗날 도쿄로 향한 이유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었다. 더 큰 성공을 좇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넓은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후쿠오카에서 차근차근 쌓아 올린 경험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향한 출발점이 되고 있었다.

제3장. 후쿠오카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다
무대 경험이 쌓일수록 카노우 미유의 활동 범위도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라이브 활동을 이어 온 그는 중학생이 되면서 후쿠오카 지역 음악계에서도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인 ‘뮤직 시티 텐진(Music City Tenjin)’에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연속으로 출연하며 꾸준히 관객들과 만났다. 어린 나이였지만 기타 하나를 메고 자작곡을 들려주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뮤직 시티 텐진은 단순한 지역 축제가 아니다. 후쿠오카 시내 곳곳을 무대로 삼아 메이저와 인디, 프로와 신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펼치는 규슈 최대 규모의 음악 행사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서 꾸준히 무대에 섰다는 것은 단순히 공연 횟수를 늘렸다는 의미를 넘어, 지역 음악 신(Scene)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카노우 미유는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보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한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무대에서 느낀 감정은 새로운 가사가 되었고, 공연을 마칠 때마다 다음 곡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에게 무대는 완성된 결과를 보여주는 장소가 아니라, 음악이 자라나는 공간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싱어송라이터’라는 꿈
보통 어린 가수들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에서 출발해 점차 자신만의 음악을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카노우 미유는 조금 달랐다.
열 살 무렵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는 줄곧 스스로 곡을 만들었다. 단순히 작곡을 취미처럼 즐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대에서 부를 노래를 직접 만드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작곡은 하나둘 늘어났고, 현재는 50곡이 넘는 오리지널 곡을 보유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창작 습관은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최근 발표한 ‘TERMINAL’이나 ‘Re:Road’처럼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한 곡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먼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화려한 기교보다 이야기의 흐름이 먼저 들어온다. 한 곡 안에 한 편의 짧은 드라마가 담겨 있는 듯한 구성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창작 방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첫 번째 큰 전환점
꾸준히 무대에 서던 카노우 미유에게 첫 번째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14년이었다.
그는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신인 발굴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던 ‘ROAD TO MCT’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지역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아직 중학생이었던 카노우 미유에게 이 수상은 단순한 상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자신의 음악이 처음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았고, 앞으로도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이 시기부터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어린 싱어송라이터’라는 이미지가 후쿠오카 지역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연 관계자들의 관심도 늘었고, 새로운 무대에 설 기회도 하나둘 생겨났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전국적인 인지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카노우 미유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명했느냐가 아니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라디오에서 전한 첫 목소리
공연뿐 아니라 라디오에서도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된 카노우 미유는 FM FUKUOKA의 ‘Hyper Night Program GOW!!’에 월간 레귤러로 출연하며 청취자들과 꾸준히 만났다. 노래를 부르는 무대와는 또 다른 공간이었다. 음악을 만드는 이야기, 학교생활, 공연 준비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며 싱어송라이터 카노우 미유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모습도 보여주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훗날 LOVE FM에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여러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된 지금도 그의 진행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별히 꾸미려 하기보다 평소 이야기하듯 차분하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화법은 이 시기부터 조금씩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는 노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공간이었다. 무대에서는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했다면, 마이크 앞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조금씩 들려주기 시작했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후쿠오카에서의 시간은 카노우 미유에게 단순한 ‘준비 과정’이 아니었다. 기타를 처음 배운 곳도, 첫 자작곡을 만든 곳도, 처음 무대에 선 곳도 모두 후쿠오카였다. 뮤직 시티 텐진과 수많은 라이브 무대를 거치며 그는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했고,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방법도 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가지 생각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후쿠오카는 자신을 키워 준 도시였지만, 더 넓은 무대를 향한 꿈은 자연스럽게 다음 도전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도전의 목적지는, 일본 음악 산업의 중심인 도쿄였다.


제4장. 도쿄, 더 큰 무대를 향한 첫걸음
후쿠오카에서 보낸 시간은 카노우 미유에게 단순한 성장기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처음 기타를 손에 쥐었던 순간부터 자작곡을 만들기 시작했고, 열한 살에는 이미 지역 라이브 무대에 오르며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된 뒤에는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음악 축제인 ‘뮤직 시티 텐진(Music City Tenjin)’에 꾸준히 출연했고,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정기적으로 모습을 비추며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던 시기, 그는 기타를 메고 공연장을 찾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있었다.
후쿠오카는 그에게 음악을 가르쳐 준 도시이자 싱어송라이터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출발점이었다. 무대에서 관객의 반응을 직접 느끼고, 공연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곡을 쓰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정체성도 더욱 확고해졌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이미 무대에 서는 법뿐 아니라 관객과 호흡하는 방법,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도 몸으로 익혀 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고민도 생기기 시작했다. 후쿠오카는 분명 자신을 성장시켜 준 도시였지만,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음악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 역시 점점 커져 갔다. 지역에서는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싱어송라이터로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보다 큰 무대가 필요했다. 일본 음악 산업의 중심인 도쿄는 자연스럽게 다음 목표가 됐다.
열여덟 살, 그는 상경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익숙했던 후쿠오카를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가족과 친구, 오랫동안 활동해 온 무대, 자신을 알아봐 주던 사람들과도 잠시 거리를 두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더 큰 무대를 향한 도전을 선택했다.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쿄는 후쿠오카와는 전혀 다른 도시였다. 거리마다 공연장이 있었고, 수많은 라이브하우스에서는 매일 신인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랐다. 유명 레이블을 꿈꾸는 뮤지션부터 인디 싱어송라이터까지 수많은 음악인들이 같은 무대를 목표로 경쟁하고 있었다. 후쿠오카에서는 ‘기타를 치며 자작곡을 부르는 어린 싱어송라이터’라는 존재 자체가 눈길을 끌었다면, 도쿄에서는 그런 이력이 특별한 경쟁력이 되지 못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공연장에 가도 자신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관객들 역시 대부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짧은 공연 시간 안에 자신의 노래와 이야기를 전달해야 했고, 단 한 번의 무대로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게 만들어야 했다. 후쿠오카에서 쌓아 온 경험은 분명 큰 자산이었지만, 도쿄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무대에 설 때마다 ‘왜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이 카노우 미유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 후쿠오카에서는 경험을 쌓는 것이 목표였다면, 도쿄에서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다. 어떤 곡이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지, 어떤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싱어송라이터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달하는 아티스트가 되고자 했다.
도쿄에서의 시간은 화려한 성공보다 치열한 배움의 연속이었다. 작은 라이브하우스에서 관객 몇 명 앞에 서는 날도 있었고,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는 오디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 과정 자체를 음악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공연이 끝나면 다시 기타를 들었고, 새로운 곡을 쓰며 다음 무대를 준비했다. 그렇게 반복된 시간은 훗날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마주했을 때도 쉽게 음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다.
오디션이 가르쳐 준 것
도쿄에서 활동을 이어 가며 카노우 미유는 다양한 오디션과 라이브 무대를 경험했다. 많은 사람들은 오디션을 데뷔를 위한 관문으로 생각하지만, 그에게 오디션은 결과보다 과정에 가까웠다. 합격과 불합격은 한순간의 결과일 뿐, 음악을 계속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특별한 한 번의 성공보다 꾸준히 무대에 서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공연이 끝나면 다시 곡을 쓰고,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고, 또 다른 오디션을 준비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은 단순히 경력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 됐다.
무대에 설수록 그는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과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노래를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는 사실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완성도 높은 음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느냐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그는 점점 기교보다 이야기에 집중했고,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랫말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됐다.
물론 모든 도전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기대했던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일도 있었고, 노력만큼 성과가 따라오지 않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번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 노래를 만들고 무대에 서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 온 라이브 경험은 이러한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가장 큰 힘이었다.
돌이켜 보면 도쿄에서의 시간은 화려한 성공보다 치열한 배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경험들이 훗날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마주했을 때도 음악을 완전히 놓지 않을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제5장. 멈춰 버린 무대, 다시 음악을 찾기까지
후쿠오카를 떠나 도쿄에서 활동을 이어 오던 카노우 미유는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라이브하우스 무대에 서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을 쌓았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색깔도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아직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흐름은 예상하지 못한 사회적 변화 앞에서 갑작스럽게 멈춰 서게 된다.
2020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은 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공연은 줄줄이 취소됐고, 라이브하우스는 문을 닫거나 운영을 축소했다.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일상이었던 아티스트들에게 무대는 더 이상 당연한 공간이 아니었다. 카노우 미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공연 일정이 사라지면서 사람들과 직접 만날 기회도 크게 줄어들었고,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창작이었다.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카노우 미유는 코로나 시기를 돌아보며 “그 무렵에는 한동안 곡을 전혀 쓰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열 살부터 꾸준히 자작곡을 만들어 왔던 그에게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기타를 손에 잡고도 새로운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았고, 무엇을 노래해야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단순히 공연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일 자체가 잠시 멈춰 버린 것이다.
그는 당시를 ‘자기 자신과 싸우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고, 앞으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반복됐다. 세상은 멈춰 있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싱어송라이터에게 경험은 곧 노래가 되지만, 세상이 멈춘 시간 속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전처럼 공연장에서 관객의 반응을 느끼고, 그 경험을 다시 노랫말로 풀어내는 선순환이 끊기면서 창작 역시 자연스럽게 멈춰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을 완전히 포기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기는 자신이 왜 노래를 만들고 있는지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대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음악을 계속하고 싶은지, 누군가에게 들려줄 기회가 없어도 곡을 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답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졌다. 무대가 없어서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시작된 창작
오랜 침묵 끝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기타였다.
카노우 미유는 한동안 멈춰 있던 창작을 다시 시작했고, 조금씩 새로운 멜로디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곡을 쓰지 못했던 만큼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한 곡을 완성하면서 잃어버렸던 감각도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미유는 이후 공개된 라디오 방송에서, 코로나 시기를 거친 뒤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한 자작곡이 ‘Re:Road’였다고 회상했다. 한동안 멈춰 있던 창작이 다시 시작됐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였고, 이 곡을 계기로 “다시 싱어송라이터로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Re:Road’ 이후에는 조금씩 창작의 흐름도 되살아났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감정들이 다시 노랫말이 되었고, 무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람을 향한 마음도 새로운 곡으로 이어졌다. 카노우 미유는 라디오에서 “그때 다시 곡을 쓰면서, 역시 나는 노래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창작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자신이 음악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발표한 작품들의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전보다 감정의 결이 한층 깊어졌고,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시간의 흐름,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에 대한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분명 가장 힘든 시간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카노우 미유가 싱어송라이터로서 다시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제6장. 다시 무대 위로…’트롯걸즈 재팬’이 바꾼 인생
코로나19로 인해 멈춰 있던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자 카노우 미유도 다시 무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곡을 완성했고, 창작에 대한 감각도 서서히 되찾아 갔다. 하지만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공연 문화는 이전과 같은 활기를 되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의 활동을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지도 다시 고민해야 했다.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했지만,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할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였다.
그 무렵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그램 ‘트롯걸즈 재팬(TROT GIRLS JAPAN)’이었다. 일반적인 지원 방식이 아니라, TikTok에서 그의 노래를 본 프로그램 관계자가 직접 연락을 보내 오디션 참가를 제안한 것이다. 당시 카노우 미유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TikTok을 통해 다시 노래를 올리기 시작했고,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즐겨 부르던 가요와 트로트 계열의 노래도 함께 선보이고 있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TikTok을 시작하면서 내 목소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 자신감이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카노우 미유가 원래부터 트로트 가수를 꿈꿨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싱어송라이터였다. 기타를 연주하며 자신의 곡을 부르는 아티스트를 꿈꿨고, 오랫동안 그 길만을 바라보며 활동해 왔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장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음악을 다시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기존의 이미지를 지키는 것보다 새로운 무대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디션은 그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다. 프로그램에서 카노우 미유는 안정적인 가창력은 물론, 오랜 시간 무대에서 다져 온 표현력과 감성으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예선에서 선보인 JUDY AND MARY의 ‘Over Drive’ 무대 영상은 TikTok에서 수백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관련 영상까지 합치면 조회 수는 천만 회를 넘어섰고, 이전까지 지역 라이브 무대와 공연장을 중심으로 알려져 있던 그의 이름은 온라인을 통해 훨씬 넓은 대중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노우 미유에게 가장 큰 변화는 조회 수나 화제성이 아니었다. 오디션를 통해 그는 다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코로나 시기 잠시 멈춰 있었던 음악 인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노래를 계속해도 괜찮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 한때는 음악에서 멀어져 보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트롯걸즈 재팬’은 또 다른 문을 열어 주었다. 프로그램 이후 카노우 미유는 한국에서 제작된 후속 프로젝트인 ‘한일가왕전’, ‘한일톱텐쇼’ 등에 일본 대표 멤버로 출연하며 활동 무대를 한국으로까지 넓혀 갔다. 일본에서 시작된 오디션이 국경을 넘어 새로운 무대로 이어진 것이다. 후쿠오카에서 기타를 메고 노래하던 소녀는 어느새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다.

제7장. 국경을 넘어 이어진 노래
‘트롯걸즈 재팬’은 카노우 미유에게 단순한 오디션 프로그램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오랜 시간 자신만의 음악을 지켜 온 싱어송라이터였지만,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그는 전혀 다른 무대와 새로운 관객을 만나게 됐다. 특히 후속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서 활동할 기회가 이어지면서, 그의 음악 인생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일본 대표 멤버들은 한국에서 제작된 ‘한일가왕전’, ‘한일톱텐쇼’ 등에 출연하며 한국 시청자들과도 만나게 됐다. 일본에서 활동해 온 싱어송라이터에게 한국의 방송 시스템과 무대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언어도 달랐고,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도 달랐다. 무엇보다 방송을 통해 수많은 시청자들과 동시에 만나는 경험은 라이브하우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그에게 또 다른 형태의 무대였다.
하지만 카노우 미유는 새로운 환경을 낯설어하기보다 하나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부터 특정 장르에 자신을 가두는 스타일의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면서도 다양한 음악을 접했고, 새로운 경험을 자신의 음악으로 흡수하는 데 익숙했다. 한국 활동 역시 그런 연장선에 있었다. 단순히 해외 진출이라는 의미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음악으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에서의 활동은 그의 음악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공연과 방송을 오가며 일본어와 한국어, 두 언어가 같은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했고, 음악은 언어를 넘어 사람을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됐다. 후일 그가 일본과 한국을 함께 떠올리며 만든 자작곡 ‘TERMINAL’ 역시 이러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공간인 터미널을 소재로 한 이 곡에는 국경을 오가며 활동하는 자신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TERMINAL’은 이동을 노래하는 곡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소와 사람을 이어 주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읽을 수 있다.
새로운 팀, 그리고 또 다른 도전
한국 활동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카노우 미유는 ‘트롯걸즈 재팬’을 통해 인연을 맺은 멤버들과 함께 여성 그룹 sis의 멤버로도 활동하게 됐다.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을 가진 네 명의 아티스트가 하나의 팀으로 모인 sis는 트로트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본과 한국의 음악 문화를 연결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데뷔곡 ‘사랑의 배터리(愛のバッテリー)’를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가며, 카노우 미유 역시 솔로 활동과 그룹 활동을 병행하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룹 활동이 시작된 이후에도 카노우 미유가 싱어송라이터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릴 적 처음 만든 곡 ‘포기하지 마(あきらめないで)’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곡을 쓰는 습관도 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힘들었던 일이 생기면 그것을 가사로 풀어내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감정을 노래 속에 담는 방식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룹 활동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카노우 미유를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동시에 자신이 어떤 아티스트인지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무대의 즐거움을 배우는 한편, 언젠가는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도 더욱 선명해졌다. 그래서 그는 그룹 활동과 별개로 꾸준히 자작곡 작업을 이어 갔고,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한국 활동이 남긴 변화
한국에서의 활동은 카노우 미유에게 새로운 무대를 경험하게 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일본에서 라이브하우스와 지역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면, 한국에서는 방송 프로그램과 대규모 공연을 통해 보다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활동하며 무대에 대한 시야도 넓어졌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물론 한국 활동이 그의 음악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카노우 미유는 지금도 일본을 중심으로 솔로 활동과 그룹 활동을 병행하며 꾸준히 새로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다만 ‘트롯걸즈 재팬’과 한국 활동은 오랫동안 이어 온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싱어송라이터로 걸어온 시간 위에 새로운 경험이 더해졌고, 활동 무대 역시 일본에 머물지 않고 한층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이러한 경험은 카노우 미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어린 시절 후쿠오카에서 시작한 음악이 도쿄를 거쳐 한국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씩 받아들이며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지금도 그의 중심에는 여전히 ‘노래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정체성이 자리하고 있다.

제8장. ‘TERMINAL’이 말하는 지금의 카노우 미유
카노우 미유의 음악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어떤 곡을 들어야 할까. 사람마다 답은 다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카노우 미유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TERMINAL’을 빼놓기 어렵다.
이 곡은 화려한 편곡이나 강렬한 퍼포먼스로 귀를 사로잡기보다, 조용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에 가깝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공간인 터미널을 소재로 삼아, 만남과 이별, 기다림과 다시 시작이라는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처음 들으면 여행을 노래한 곡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시간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곡은 카노우 미유의 현재 활동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을 오가고, 여러 도시에서 공연을 이어 가는 지금의 삶은 공항과 역, 그리고 수많은 터미널을 지나가는 시간의 연속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 느낀 감정들이 하나의 노래로 이어졌고, ‘TERMINAL’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기록한 작품처럼 다가온다.
그는 LOVE FM 라디오 프로그램 ‘카노우 SAY’에서 이 곡을 소개하며 “일본과 한국의 여러분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활동 무대가 자연스럽게 두 나라로 넓어졌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어느 한쪽만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자신을 응원해 주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도 함께 담겨 있었다. 실제로 이 곡은 공연에서도 자주 선곡되며 카노우 미유를 대표하는 자작곡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일’
카노우 미유의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온 팬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시대에 따라 편곡과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든다는 점만큼은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열 살 무렵 기타를 배우며 처음 작곡을 시작했을 때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노랫말에 담았다. 후쿠오카에서 거리 공연을 이어 가던 시절에도, 도쿄로 상경해 새로운 무대를 경험하던 시기에도, 코로나19로 활동이 멈췄던 시간에도 결국 음악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법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표현 방식은 조금씩 성숙해졌다. 어린 시절에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풀어냈다면, 지금은 직접적인 표현보다 여백을 남기며 듣는 사람 각자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는 노랫말을 쓰게 됐다. 사랑을 노래하더라도 단순한 설렘보다 관계 속에서 느끼는 거리감과 기다림, 그리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감정을 담아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성장해 온 시간과도 무관하지 않다. 수많은 무대를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쌓인 시간은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정체성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싱어송라이터였고,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계속해서 써 내려갈 다음 이야기
지금의 카노우 미유는 솔로 아티스트이자 그룹 sis의 멤버로 활동하며 일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라이브 공연과 이벤트, 방송 출연을 병행하는 일정 속에서도 꾸준히 새로운 곡을 만들고 공연을 이어 가고 있으며, 후쿠오카에서 시작된 음악 인생은 어느덧 전국을 무대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앞으로 어떤 음악을 발표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수도 있고,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작곡을 발표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한 가지는 분명하다. 활동 형태가 바뀌고 무대가 달라져도 카노우 미유는 언제나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점이다.
미에현에서 태어나 후쿠오카에서 자랐던 한 소녀는 기타 한 대로 음악을 시작했고, 도쿄에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했으며,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멈춰 서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노래를 만들며 자신의 길을 이어 왔다.
카노우 미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하나의 결말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음악 인생의 또 다른 출발점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의 다음 무대와 다음 노래 역시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에필로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카노우 미유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면 특별한 한순간이 모든 것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미에현에서 태어나 네 살 무렵 후쿠오카로 이주한 한 소녀는 열 살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열한 살에는 직접 만든 노래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중학생 시절에는 후쿠오카 곳곳에서 공연을 이어 갔고,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열여덟 살에 도쿄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라이브와 오디션을 경험했고, 코로나19라는 예상하지 못한 시기를 지나며 한동안 창작이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다시 기타를 들었고, 다시 노래를 만들었다.
그렇게 이어진 시간이 ‘트롯걸즈 재팬’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만났고,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기를 카노우 미유의 전환점으로 기억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이어 온 음악 인생이 또 하나의 무대를 만난 순간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 온 ‘노래를 만들고 무대에 선다’는 삶의 방식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화려함보다 진정성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만남과 이별, 불안과 희망,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 카노우 미유는 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었고, 그 기록들은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음악 세계를 이루기 시작했다. ‘Re:Road’가 다시 걸어가기 위한 다짐이었다면, ‘TERMINAL’은 서로 다른 사람과 장소를 이어 주는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었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 왔다.
최근에도 그는 일본 각지의 라이브 무대와 지역 행사, 그룹 sis 활동, 그리고 솔로 공연을 꾸준히 이어 가고 있다. 활동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 만나 노래를 들려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카노우 미유를 설명할 때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가’보다, 지금도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한 사람의 음악 인생을 완성된 성공담으로 정리하기 위해 쓰인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여정을 돌아보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앞으로 어떤 곡을 발표하게 될지, 어떤 무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카노우 미유는 늘 자신의 삶을 음악으로 기록해 왔고, 앞으로도 그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후쿠오카의 작은 무대에서 기타 한 대를 메고 노래하던 소녀는 이제 더 넓은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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